8월 텃밭에서 해야 할 일|여름을 거두고 가을을 심는 시간

8월 텃밭에서 수확한 끝물 오이와 토마토
8월 텃밭에서 수확한 끝물 오이와 토마토입니다. 여름 채소를 거두며 가을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의 풍성한 수확을 보여 줍니다.

들어가는 말

8월을 앞둔 텃밭에 서면 계절이 두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여름이 마지막 힘을 다해 열매를 익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을 농사가 조용히 시작됩니다. 아침에는 이슬이 맺혀 있지만 한낮의 흙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오이 넝쿨은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고추는 붉게 익어 가지를 휘게 하고, 토마토는 마지막 열매를 내어주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맘때의 텃밭은 가장 풍성하면서도 가장 지쳐 있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수확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름을 잘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가을을 준비해야 하는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름이 남기고 간 텃밭의 풍경

7월 말의 텃밭은 봄의 싱그러움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무성했던 오이 넝쿨은 아래쪽 잎부터 누렇게 시들기 시작하고, 애호박은 어느새 늙어버린 열매를 이랑 사이에 숨겨 놓았습니다. 토마토는 곁순이 서로 얽혀 작은 숲처럼 변했고, 방울토마토는 미처 따지 못한 사이 익어 터져 버리기도 합니다.

매일 들여다본다고 생각했는데도 여름 식물의 속도는 사람보다 훨씬 빠릅니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저는 조금 미안해집니다.

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을 찾았지만,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발걸음은 조금씩 뜸해졌기 때문입니다. 잡초 한 포기를 미루고, 가지치기를 하루 늦춘 사이 텃밭은 금세 다른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텃밭은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지친 줄기 끝에서도 꽃을 피우고, 마지막 힘으로 열매를 익혀 냅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 끝의 텃밭을 가장 좋아합니다.

완벽하게 관리된 모습은 아니지만, 한 계절을 함께 버텨 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끝물 채소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을 한다

'끝물'이라는 말에는 왠지 아쉬움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텃밭에서 끝물 채소를 거두다 보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울퉁불퉁한 오이는 나물로 무쳐 먹고, 늙은 애호박은 말려 두었다가 겨울 국거리가 됩니다. 무르게 익은 토마토는 소스로 만들어 두면 한여름의 맛이 오래 남습니다.

끝물 채소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합니다.

시장에서는 보기 좋은 것만 고르게 되지만, 텃밭에서는 조금 못생긴 열매도 버리기 어렵습니다.

몇 달 동안 비를 맞고 햇볕을 견디며 자란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에는 절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봄의 시작이 있고, 여름의 풍성함이 있으며, 마지막까지 내어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끝물 채소는 제게 잘 저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름 끝물에 수확한 참외를 담은 바구니

여름 햇살을 머금고 익은 참외를 수확한 모습입니다. 끝물 채소와 과일도 마지막까지 풍성한 결실을 선물해 줍니다.

가을 농사는 여름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농사는 가을에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텃밭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추와 무, 갓과 쪽파는 더위가 가장 심한 8월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시기를 자주 놓쳤습니다.

'조금 더 시원해지면 심어야지.'

그렇게 미루다 보면 어느새 늦어지고, 배추는 속이 차기도 전에 찬바람을 맞곤 했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가을 채소는 더위를 견디며 자라야 가을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한낮을 피해 해 질 무렵 씨를 뿌리고, 짚으로 흙을 덮어 수분을 지켜 줍니다.

오늘의 땀이 두 달 뒤 김장 배추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직접 키운 여름 수박을 수확한 모습

직접 키운 수박을 수확한 모습입니다. 여름의 마지막 수확을 마친 뒤 텃밭은 가을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흙은 늘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여름 작물을 거둔 자리는 그대로 비워 두지 않습니다.

남은 줄기를 정리하고, 뿌리를 뽑고, 흙을 뒤집어 공기를 넣어 줍니다.

잘 익은 퇴비를 섞고 유기질 거름을 넣으면 흙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확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이때 이루어집니다.

몇 해 텃밭을 가꾸다 보니 결국 농사는 채소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흙을 키우는 일이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계절이 지나고 또 한 계절이 쌓이며 조금씩 깊어집니다.


정원365 가드너의 생각

8월의 텃밭은 참 특별합니다.여름 채소를 거두는 손과 가을 씨앗을 심는 손이 같은 사람의 손이라는 사실을 이 계절이 가장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끝과 시작을 서로 다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텃밭은 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끝을 정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음 계절이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8월을 좋아합니다.

수확의 기쁨도 있고,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는 설렘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저는 여름을 거두며 가을을 심었습니다.

아마 내년 이맘때도 같은 자리에서 흙을 만지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텃밭은 늘 다음 계절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저도 조금씩 계절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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