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2026년 세계 정원 트렌드가 달라진 이유
여러 종류의 꽃과 관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정원입니다.
최근 세계 정원은 화려한 식재보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자연형 정원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장마가 지나가고 불볕더위가 시작된 어느 아침, 나는 물뿌리개를 들고 베란다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축축하게 늘어져 있던 잎들이 이번엔 바싹 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체 나는 매년 여름마다 왜 이렇게 식물과 씨름을 하는 걸까.' 그 물음이 나를 올여름 해외 정원 트렌드를 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알게 된 건, 세계의 정원사들도 더 이상 기후와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내가 직접 겪고 바꿔본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1. 물과 싸우기를 멈추자 정원이 편해졌다 — 내건성 식물로의 전환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오랫동안 '예쁜 한해살이꽃'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봄이면 화려한 페튜니아와 임파첸스를 잔뜩 사다 심고, 여름이면 그것들이 폭염에 녹아내리는 걸 보며 매일같이 물을 퍼 날랐다. 그런데 올해 해외 자료들을 보다가 무릎을 쳤다. 2026년의 가장 뚜렷한 흐름은 '저관리·내건성 식물로의 전환'이었다. 섬세한 한해살이보다 튼튼한 자생·다년생 식물이 대세라는 것이다. 에키네시아(coneflower), 살비아, 러시안세이지, 야로우(서양톱풀), 라벤더, 로즈마리, 루드베키아 같은 식물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폭염에도 거의 물을 주지 않아도 견딘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나도 베란다 한쪽을 라벤더와 로즈마리로 바꿔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침저녁으로 물뿌리개를 들고 전전긍긍하던 내가, 이제는 며칠에 한 번 슬쩍 흙을 만져보는 것으로 충분해졌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걸 두고 "혹독한 여름과 맞서 싸우기보다, 스마트한 물주기와 내열성 식물 선택으로 적응하라"고 조언한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원은 정복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후에 맞춰 함께 흘러가는 공간이라는 걸 나는 폭염 한복판에서야 겨우 배웠다.
꽃뿐 아니라 잎의 색과 질감을 활용하는 식재가 세계 정원 디자인의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사계절 아름다운 잎을 감상할 수 있는 관목은 관리 부담도 적습니다.
2. '움직임'이 있는 정원 — 관상용 그라스와 질감의 시대
두 번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트렌드는 '질감(texture)'과 관상용 그라스였다. 예전의 나는 꽃 색깔에만 눈이 갔다. 빨강, 노랑, 보라… 색이 화려할수록 좋은 정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2026년 해외 정원 디자인의 핵심 키워드는 '색'이 아니라 '질감과 움직임'이었다. 억새나 무늬새 같은 관상용 그라스를 정원의 중심 요소로 두는 흐름이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을 '살아 있는 예술(living art)'이라 부르는데, 곧게 선 그라스와 둥글게 뭉치는 다년생 식물, 사철 푸른 상록수를 붓질처럼 엮어 계절마다 표정이 바뀌는 풍경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특히 주목받는 건 '내추럴리스틱 매트릭스 식재(matrix planting)'다. 그라스와 다년생 식물을 비슷한 높이로 촘촘히 섞어 심어, 잡초가 자랄 틈을 그늘로 막고 물 사용도 줄이는 방식이다. 나는 이 개념을 처음 접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사락사락 흔들리던 억새밭을 떠올렸다. 화분 하나에 무늬새 한 포기를 들여봤는데, 에어컨 바람에도 잎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라벤더와 민트, 그라스, 대나무처럼 흔들리고 향기 나는 식물들이 만드는 '다감각적 경험'이 사람을 천천히 머물게 한다는 해외 기사의 문장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했다. 정원은 눈으로만 보는 곳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코로 맡는 공간이다.
3. 화분 하나가 두 가지 일을 하게 하라 — 작은 공간과 '에디멘탈'
세 번째 이야기는 나처럼 베란다나 작은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특히 반가워할 만하다. 2026년 새로 소개되는 식물들은 아예 '작은 공간, 화분 재배, 까다로운 기후'를 겨냥해 개발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무릎을 친 건 '에디멘탈(edimental)'이라는 개념이었다. 먹을 수 있으면서(edible) 동시에 관상 가치(ornamental)까지 지닌 식물을 뜻하는데, 자주색 바질, 무지개빛 근대(rainbow chard), 늘어지는 방울토마토, 타고 오르는 강낭콩 같은 것을 화분 하나에 함께 담아 '아름다움과 수확'을 동시에 얻는 방식이다. 해외 정원사들의 원칙은 명료했다. "식물 하나를 고를 때 여러 역할을 하게 하라." 즉 관상 가치와 식용 가치, 그리고 수분매개곤충(벌·나비) 지원까지 한 포기가 다 해내도록 고른다는 것이다. 컨테이너 디자인도 바뀌었다. 자잘한 화분 여러 개보다, 크고 존재감 있는 화분 몇 개를 두고 위로 뻗어 올리는 '수직 재배'로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트렌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곧바로 큰 화분 하나에 방울토마토와 바질, 그리고 꽃이 피는 한련화를 함께 심어봤다. 아침이면 벌이 한련화를 찾아오고, 저녁이면 방울토마토를 몇 알 따 먹고, 바질은 파스타에 넣는다. 화분 하나가 관상·수확·생태계 지원이라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걸 보면서, '작은 공간이라 못 한다'는 건 결국 내 핑계였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트렌드를 관통하는 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올여름 내가 가장 크게 바꾼 건 사실 식물의 종류가 아니라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엔 폭염 예보가 뜨면 그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제는 미리 준비한다. 해외든 국내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 똑같았다. 폭염 자체는 피할 수 없어도, 하루 이틀 전에 대비하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식물은 여름을 견뎌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흙 위에 볏짚이나 나무껍질을 덮는 '멀칭'을 생활화했다. 멀칭 한 겹이 흙의 수분을 붙잡고 온도를 낮춰주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왜 이걸 진작 안 했나 싶었다. 물은 반드시 이른 아침에, 잎이 아니라 흙에 천천히 준다. 한낮엔 차광망으로 강한 볕을 가려 잎이 타는 걸 막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에 많은 일을 몰아서 하기보다 매일 짧게 정원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였다. 2026년 세계 정원 트렌드의 결론은 화려한 신품종이 아니라, 결국 '기후에 적응하는 지혜'였다. 덜 심고, 덜 주고, 더 튼튼한 것을 고르는 것. 정원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던 욕심을 내려놓자, 오히려 정원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시작했다. 올여름, 당신의 정원도 싸움터가 아니라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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