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산청 텃밭에 핀 금화규, 식물성 콜라겐 꽃 이야기
6시 내고향에 소개된 산청 금화규는 '식물성 콜라겐 꽃'으로 알려진 여름 약용식물입니다. 금화규의 특징과 활용법, 식물성 콜라겐이라는 별명의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칠월의 텃밭 한구석,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손바닥보다 큰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금화규였다. 지난봄 얻어 심은 모종이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겨 자라더니, 한여름이 되자 매일 한두 송이씩 황금빛 꽃을 피워 올린다. 신기한 것은 이 꽃이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면 시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하루를 온전히 살고 지는 꽃 앞에서, 나는 여름 텃밭이 건네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흔히 '식물성 콜라겐 꽃'이라 불리는 이 낯선 손님과 함께한 한여름의 기록이다.
하루만 피고 지는 꽃, 금화규를 처음 심던 해
금화규를 처음 알게 된 건 이웃 어른이 건네준 씨앗 한 봉지에서였다. "이게 식물성 콜라겐이라는 거야" 하시며 몇 알을 손에 쥐여 주셨는데, 이름도 생김새도 낯설어 반신반의하며 텃밭 한 귀퉁이에 심었다. 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이라는 금화규는 자라는 속도가 놀라웠다. 오월에 아주심기한 모종이 장마를 지나며 쑥쑥 크더니, 칠월이 되자 사람 키를 넘어 이 미터 가까이 자랐다. 줄기 끝마다 봉오리가 맺히고, 그 봉오리가 하나씩 벌어질 때면 지름이 한 뼘은 되는 커다란 노란 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이 꽃은 참으로 부지런하고도 야박하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오후 서너 시만 지나면 벌써 시들어 오므라든다. 꽃 한 송이의 수명이 반나절 남짓인 셈이다. 그래서 금화규를 기르는 사람은 아침이 바쁘다. 꽃이 가장 온전할 때 따야 하니, 해가 높이 뜨기 전에 텃밭으로 나가 그날 핀 꽃을 거둔다. 노란 꽃잎 위로 아침 이슬이 맺히고 부지런한 벌들이 벌써 꽃 속을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밤새 얼마나 많은 준비가 있었을까 싶어 마음이 잠시 숙연해지기도 한다. 하루만 피고 지는 이 꽃을 매일 아침 마주하다 보면, 여름 한 철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또 제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몸으로 배우게 된다.
한여름 햇살 아래 활짝 핀 금화규 꽃. 황촉규 또는 닥풀이라고도 불리며, '식물성 콜라겐 꽃'이라는 별명으로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금화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식물성 콜라겐'이다. 꽃과 잎을 만지면 미끈한 점액질이 손에 감기는데, 이 끈적한 성분이 마치 콜라겐처럼 피부에 좋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다. 실제로 금화규에는 점액 다당류와 플라보노이드 같은 성분이 풍부해, 예부터 차로 우려 마시거나 화장품 원료로 쓰였다고 한다. 요즘은 금화규 추출물을 넣은 에센스나 보습 크림도 나온다니, 그 인기가 짐작이 간다. 다만 나는 이 '콜라겐'이라는 이름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대하는 편이다. 엄밀히 말하면 식물에는 동물의 콜라겐과 같은 단백질이 들어 있지 않다. '식물성 콜라겐'이란 콜라겐과 비슷한 촉감과 보습감을 주는 점액 성분을 부르는 말에 가깝고, 그것을 먹거나 바른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 몸의 콜라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만병통치의 기적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여름철 텃밭이 내어 주는 순한 자연의 선물 정도로 여기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옛 어른들이 이 꽃을 차로 달여 마시고 여인들이 꽃물을 얼굴에 발랐다는 이야기도, 대단한 효험을 좇아서라기보다 곁에 있는 자연을 알뜰히 살려 쓰던 소박한 지혜였을 것이다. 이름값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꽃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텃밭을 오래 가꾸며 조금씩 배운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한여름 더위와 산청 땅이 잘 맞는 작물
금화규의 가장 큰 매력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위에 강해서 한여름 뙤약볕에도 지치는 기색 없이 오히려 그때 가장 왕성하게 꽃을 피운다. 다른 채소들이 폭염에 잎을 늘어뜨리고 병해충에 시달릴 때에도, 금화규는 별다른 농약 없이 씩씩하게 자란다. 병충해가 적어 무농약 친환경 재배가 어렵지 않다는 점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다만 물을 조금 좋아하는 편이라 장마철에 뿌리가 무르지 않도록 물 빠짐만 신경 써 주면, 나머지는 제 스스로 알아서 쑥쑥 자란다. 이런 성질 덕분에 금화규는 우리네 여름 기후와 잘 맞는다. 제주에서 소량 재배되던 것이 요즘은 충북 괴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퍼지고 있고, 내가 사는 산청에서도 농업기술센터가 지역 작목으로 눈여겨보고 있다고 들었다. 지리산 자락의 맑은 물과 큰 일교차, 볕 좋은 여름을 지닌 산청의 땅은 사실 이런 약용식물이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산청은 예부터 약초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아, 골짜기 곳곳에서 한방 약재를 길러 온 내력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나는 텃밭 한 이랑에 심은 몇 포기로도 여름 내내 꽃을 넉넉히 거두었지만, 넓은 밭에 줄지어 핀 금화규가 한여름 산청의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언젠가 이 꽃이 우리 고장의 여름을 대표하는 풍경 하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잎은 말려 가루로, 뿌리는 한지로 — 버릴 것이 없는 꽃
금화규를 알아 갈수록 놀라는 것은, 이 식물이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는 점이다. 마침 텃밭 일을 마치고 튼 텔레비전에서 산청의 금화규를 다루고 있었는데, 꽃과 잎은 물론 뿌리까지 알뜰하게 쓰이는 모습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흔히 차로 우려 마시는 꽃 말고도, 잎은 잘 말려서 곱게 가루를 내어 쓴다. 말린 잎 가루는 떡이나 국수 반죽에 섞기도 하고, 물에 타 마시거나 갖가지 음식에 두루 넣는다고 한다. 여름 한 철 무성하던 초록의 잎이 한 줌의 고운 가루로 갈무리되어, 사계절 내내 부엌에서 되살아나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뿌리다. 금화규의 뿌리는 사실 우리가 '닥풀'이라 부르는 바로 그것으로, 한지를 뜰 때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뿌리에 든 끈끈한 점액질이 닥나무 섬유를 물속에서 고르게 붙잡아 흩어지지 않게 해 주어, 얇고 균일한 종이를 뜰 수 있게 돕는다. 한 송이 노란 꽃으로만 알던 금화규가, 알고 보니 천년을 이어 온 한지의 숨은 조력자였던 것이다. 어느 오래된 공방에서는 지금도 이 뿌리를 우려낸 물로 한지를 뜬다고 하니, 텃밭에 핀 꽃 한 포기가 장인의 손끝과 그렇게 이어져 있는 셈이다. 꽃은 차와 화장수로, 잎은 가루로, 뿌리는 종이로 — 이렇게 제 온몸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식물 앞에서, 나는 옛사람들이 왜 이 꽃을 그토록 귀하게 여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꽃을 말리고 우려내며, 여름 피부를 돌보는 시간
아침마다 거둔 금화규 꽃은 그늘에 펼쳐 말린다. 노랗던 꽃잎이 볕과 바람에 서서히 마르면서 은은한 빛으로 갈무리되면, 그것을 유리병에 담아 두고 여름 내내 차로 우려 마신다. 뜨거운 물에 마른 꽃을 몇 송이 넣으면 맑은 노란빛이 우러나고, 향은 진하지 않지만 목 넘김이 부드럽고 순하다. 땀을 많이 흘려 지치는 여름날, 이 차 한 잔이 몸을 가만히 다독여 주는 기분이 든다. 남은 꽃은 곱게 말려 두었다가 물에 불려 얼굴에 올려 보기도 하고, 우린 물을 화장수 대신 톡톡 두드려 바르기도 한다. 대단한 효과를 바라서라기보다, 한여름 뜨거운 볕에 지친 피부를 자연이 준 것으로 가만히 달래 보는 일종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사실 여름철 피부에 가장 좋은 것은 값비싼 무엇이 아니라 충분한 물과 그늘,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나는 안다. 다만 내 손으로 기른 꽃을 말리고 우려내는 이 느린 과정 속에서, 나는 계절을 천천히 살아 내는 법을 배운다. 금화규 한 송이가 건네는 위로는 어쩌면 '콜라겐'이라는 이름보다 바로 그 시간 안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해 질 무렵, 아침에 활짝 피었던 금화규가 하루를 마치고 조용히 오므라든다. 반나절을 온전히 피었다 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여름 한 철을 닮았다. 짧지만 뜨겁게, 제 몫을 다하고 물러나는 것. 나는 내일 아침에도 빈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나가, 새로 핀 노란 꽃을 거둘 것이다. 식물성 콜라겐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잠시 내려놓고, 그저 한여름 산청 텃밭에 핀 이 부지런한 꽃과 또 하루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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