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정원의 벌레들과 화해하는 법|진딧물보다 무당 벌레를 기다리게 된 이유
한여름 아침, 텃밭에 나갔다가 고추 잎 뒷면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진딧물을 보고 나도 모르게 깊은 내쉬.한숨을었다
"오늘도 약을 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이었다면 곧장 창고로 달려가 살충제부터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여러 번의 여름을 흘려보내는 동안, 나는 벌레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미워하고 없애야 할 적에서, 이 작은 생태계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오늘은 그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텃밭에서 벌레들과 화해해 온 나의 여름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아 본다.
고추 줄기에 무리를 지어 붙어 있는 진딧물. 처음에는 없애야 할 해충으로만 보였지만, 무당벌레와 풀잠자리 같은 익충이 찾아오며 자연의 균형을 배우게 된 여름 정원의 모습입니다.진딧물과의 첫 전쟁, 그 여름의 조급함
시골 살이 첫 여름, 나는 텃밭을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애써 심은 고추와 가지, 오이가 조금이라도 상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장마가 지나고 기온이 부쩍 오르자 잎 뒷면마다 진딧물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린 순은 진딧물이 빨아 먹은 자리마다 쪼그라들었고, 잎은 끈끈한 감로로 번들거렸다. 나는 그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읍내 농약사로 달려가 살충제를 사 왔다. 며칠에 한 번씩 분무기를 짊어지고 이랑 사이를 오가며 약을 뿌렸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열흘도 지나지 않아 진딧물은 다시 돌아왔고, 그때마다 나는 더 독한 약을, 더 자주 뿌렸다. 어느 날 문득 밭 한가운데 서서 분무기를 든 내 모습을 내려다보니, 나는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정원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기려 할수록 밭은 지쳐 갔고, 나도 함께 지쳤다.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깨끗한 밭을 꿈꿨지만, 그렇게 애를 써도 진딧물은 늘 나보다 부지런했다. 그 여름 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조급함이었다. 자연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번번이 배신당할 때의 초조함. 지금 돌아보면 그 조급함이야말로 밭을 가장 병들게 한 원인이었다.
무당벌레와 사마귀, 정원이 보내준 뜻밖의 손님들
변화의 실마리는 아주 사소한 관찰에서 왔다. 살충제 뿌리기를 며칠 미룬 어느 아침, 진딧물이 잔뜩 낀 고춧대에서 작고 빨간 무당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무당벌레는 느긋하게 잎을 기어다니며 진딧물을 하나씩 삼키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투명한 날개를 단 풀잠자리도 보였고, 잎 끝에는 알에서 막 깨어난 무당벌레 애벌레들이 꼬물거렸다. 나는 그날 분무기를 내려놓았다. 며칠을 지켜보니 무당벌레 한 마리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진딧물이 수십 마리에 이른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이랑 끝 호박잎 위에 사마귀가 자리를 잡았다. 두 앞다리를 접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방이며 파리를 순식간에 낚아채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없애려 애쓰던 벌레들 사이에는, 사실 나를 대신해 밭을 돌봐 주는 조력자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을. 살충제는 진딧물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 고마운 손님들까지 함께 죽이고 있었다. 해충을 없애려던 내 손이 정작 익충의 씨를 말리고, 그래서 진딧물이 더 창궐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정원은 이미 스스로를 지킬 힘을 품고 있었는데, 나는 그 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충제를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살충제를 끊기로 마음먹은 뒤로 밭에는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 한두 주는 솔직히 불안했다. 진딧물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 같았고, 몇 번이나 다시 분무기에 손이 갔다. 그러나 꾹 참고 기다리자, 놀랍게도 한 달쯤 지난 뒤부터 밭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 갔다. 무당벌레와 풀잠자리, 사마귀와 거미가 늘어나면서 진딧물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작물이 견딜 만한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조절되었다. 나는 대신 다른 방법들을 배워 갔다. 진딧물이 심한 잎은 손으로 훑어 내거나 물을 세게 뿌려 떨어뜨렸고, 밭 가장자리에는 진딧물이 싫어하는 허브와 메리골드를 심었다. 목초액과 난황유처럼 순한 재료로 만든 자연 방제제도 가끔 썼다. 무엇보다 흙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거름을 충분히 넣어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면 웬만한 벌레의 공격쯤은 스스로 이겨 낸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벌레와 싸우는 대신 흙과 작물의 힘을 기르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손에 힘을 빼고 나니 밭일이 훨씬 덜 고단해졌다. 완벽하게 깨끗한 밭이라는 환상을 버리자, 약간의 벌레 먹은 잎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그 여유가 오히려 나를 더 오래 정원 곁에 머물게 했다.
벌레 소리로 계절을 읽는 여름밤의 정원
벌레를 적으로만 여기지 않게 되자, 정원의 여름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해가 지고 더위가 한풀 꺾이면 마당에 나가 평상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 밭을 바라보곤 한다. 그 시간이면 낮 동안 숨죽였던 온갖 소리가 살아난다. 풀숲에서는 여치와 베짱이가 쓰르르 울고, 저만치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이 밀려온다. 한여름의 절정에는 매미 소리가 온 산을 가득 채우다가, 처서가 가까워지면 어느새 귀뚜라미의 청아한 울음으로 바뀐다. 나는 이제 달력을 보지 않고도 벌레 소리만으로 계절이 어디쯤 왔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매미가 잦아들고 밤 풀벌레 소리가 굵어지면, 아 이제 여름의 끝자락이구나 하고 몸이 먼저 안다.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느릿느릿 빛을 그리며 지나가는 밤이면, 이 작은 생명들과 한 마당을 나눠 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한때 나는 벌레 없는 정원을 이상적인 정원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온갖 벌레가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정원이야말로 살아 있는 정원이라는 것을. 벌레 소리가 사라진 밭은 조용한 만큼 어쩌면 죽어 있는 밭일지도 모른다. 그 소란스러운 여름밤의 합창이, 이제는 내 정원이 건강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처럼 들린다.
물론 지금도 벌레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애써 키운 배추가 하룻밤 새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면 여전히 속이 상하고, 진딧물이 유난히 극성인 해에는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다만 이제는 그 앞에서 무작정 약을 집어 들지 않는다. 잠시 기다리며 익충이 오기를, 밭이 스스로 균형을 되찾기를 지켜볼 줄 알게 되었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자연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발을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 작은 벌레들에게서 배웠다. 올여름에도 나는 고추 잎 뒷면의 진딧물을 보며 한숨을 쉬겠지만, 그 옆에 앉은 무당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이내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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